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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cKOO의 글그리기@/# Storytelling #

글그리는 먹구형

by MucKOO 2025.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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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난 먹구형이라고 해. 30년차 그래픽 디자이너지. 어느새 머리는 희끗희끗해졌고, 안경은 점점 두꺼워지고 있어. 하지만 내 상상력만큼은 아직도 청춘이라고 우기고 있지. 허허.

 

처음 그래픽 디자인이란 걸 시작했을 때가 생각나네. 그땐 포토샵도 1.0 버전이었고, 컴퓨터는 무지하게 비쌌어. 학교 컴퓨터실에서 밤새 작업하다가 가끔 파일 날려먹고 울었던 기억도 나고. 그때는 포토샵에 '실행취소' 기능이 지금처럼 무한대가 아니었거든. Ctrl+Z를 열 번만 누르면 끝! 얼마나 조심스럽게 작업했는지 몰라.

 

지금 젊은 이들은 알까 몰라? 도스(DOS)... 니들이 쓰는 윈도우 전에 컴퓨터 운영체계가 DOS였거든. 마우스가 필요 없는... 상상이 가? 그 도스에서 3D STUDIO라는 지금의 마야니, 블렌더니 하는 3D 프로그램을 썼지. 종로서적에 가서 베개보다 두꺼운 매뉴얼 자습서를 사들고 골방에서 책을 한 장 한 장 넘겨가며 모델링하던... 선풍기가 내 눈앞에서 날개가 돌아가던 날, 난 눈물이 날 정도로 환희에 휩싸였지. 감동이었어. 그것이 나의 그래픽 인생의 시작이야.


디자인 학교 다닐 때 교수님이 늘 말씀하셨지. "디자인은 문제 해결이다." 그 말을 되새기며 30년을 달려왔어. 3D하고 로고도 만들고, 포스터도 만들고, 책표지도 만들고, 웹사이트도 만들고. 뭐, 이것저것 안 해본 게 없는 올라운더지. 지금 젊은 친구들은 전문 분야를 깊게 파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 세대는 다양한 일을 두루두루 해야 했거든.

 

근데 말이야, 요즘 들어 자꾸 생각나는 게 있어. 어릴 적에 품었던 꿈 말이야. 난 사실 만화가가 되고 싶었어. 이야기를 만드는 게 너무 좋았거든. 그림 그리는 것도 좋고, 중학교 시절에는 친구들 몰래 노트에 소설도 끄적여봤고. 근데 뭐, 세상 살다 보니 밥벌이는 해야 하잖아? 그래서 그림 그리는 재주를 살려서 디자이너가 됐지.


어느 날 문득 깨달았어. 그래픽과 이야기, 이 둘이 따로 놀 필요가 없다는 걸. "콘텐츠는 스토리다"라는 각성이 온 거지. 디자인이란 게 뭐야? 시각적인 이야기 아니겠어? 그리고 이야기란 게 뭐야? 머릿속에 그림을 그리는 일 아니겠어?
그래서 뒤늦게 도전을 시작했어. '스토리 그래픽 아티스트'라는 이름으로.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간단히 말하면 '이야기하는 그림쟁이'인 셈이지.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며 시각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 그게 바로 지금의 나야.
인생은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물과 같아서 나도 그래픽을 멀리하던 시간도 있었지만,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 컴퓨터 앞에 앉아 상상하고 고민하고 뭔가 그려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것 같아.


젊은 친구들이 가끔 물어봐. "형, 30년이나 같은 일 하면 안 질려요?" 그럼 난 이렇게 대답해. "매일 다른 문제를 해결하는데 어떻게 질리겠어? 그리고 이제는 내 이야기도 만들고 있으니까 더 재밌지."
사실 디자인과 이야기는 다 '공감'에서 시작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먼저 그 마음을 이해해야 하잖아. 30년간 클라이언트의 니즈를 파악하고, 타깃 오디언스의 마음을 읽으려 노력해온 게 이제는 이야기를 만드는 데도 큰 도움이 되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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