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은 모를 거야. 내가 처음 포토샵 1.0을 켰을 때 그 느낌을. 화면은 작고, 메모리는 터지고, 마우스는 묵직했지. 그래픽 작업보다 글쓰기가 더 가벼웠어.
이제 디자인과 글쓰기는 내 몸의 양팔이 됐지. 한쪽만 있었다면 이렇게 버텨왔을까? 아마 불가능했을 거야.
디자인이 시각의 언어라면, 글쓰기는 내 생각의 뼈대니까.
오늘은 그 중에서도 '이야기'를 찾는 법에 대해 얘기해볼까 해.
그래픽으로 화려하게 포장해도 알맹이 없는 콘텐츠는 금방 들통나거든. 자, 그럼 내 30년 경험에서 뽑아낸 스토리 발굴의 비법을 풀어보자.
1. 사람을 파헤쳐라
사실 세상의 모든 이야기는 '사람'에서 시작해. 내가 젊었을 때는 사람보다 관념이나 철학에 집착했어. 결과물? 죽은 텍스트와 지루한 디자인뿐.
마흔이 넘어서 비로소 깨달았지. 추상적인 개념보다 구체적인 사람이 중요하다는 걸.
"왜 이 디자이너는 모든 작품에 파란색만 쓸까?"
단순히 "파란색을 좋아해서"라고 끝내면 아무도 관심 없어. 하지만 그가 어릴 적 바다에 빠졌다가 구조된 후 파란색에 집착하게 됐다면? 갑자기 흥미롭지 않아?
사람을 파고들 때 주목할 것들이 있어
동기와 가치관: 말로 표현하는 가치와 실제 행동의 차이를 봐. 거기에 진짜 이야기가 있어.
배경: 성장환경은 사람의 DNS야. 부유했나? 가난했나? 사랑받았나? 외로웠나?
전환점: 이력서에 나오는 직업 변화보다 "왜 그 순간에 그 결정을 했는지"가 중요해.
예전에 한 벤처 CEO의 브랜드 스토리를 만든 적 있어. 그의 '이력'은 평범했지만, 알고 보니 어머니의 암 투병이 창업 동기였던 거야. 그 지점을 파고들자 브랜드 전체가 생명력을 얻었지.
사람의 모순,
갈등,
변화가
스토리의 심장박동이야.
2. 시간을 따라가라
시간은 이야기의 강물이야.
단순히 연대순으로 배열된 사건들이 아니라, 변화의 흐름을 담고 있지. 내가 첫 디자인 회사를 차렸을 때, 모두가 프리젠테이션에 화려한 그래픽만 쑤셔 넣던 시절이었어. 나는 거꾸로 갔지. "스토리가 먼저다" 외치면서. 심지어 작가를 고용해 프레젠테이션 전체를 하나의 이야기로 디자인했어. 클라이언트들은 처음엔 어리둥절했지. "우리는 그림 보러 왔는데 소설책을 읽고 있네?" 하면서도 묘하게 빠져들더라고. 5년 후? 모든 에이전시가 '스토리 중심 디자인'을 떠들고 있었어.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보여주거든. 흐름을 읽는 자가 미래를 만든다니까.
스토리를 발굴할 때 시간의 요소 뭘까?
Before & After: 무엇이 변했나? 그 차이가 드라마야.
터닝포인트: "그때 아니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야"라는 순간.
리듬과 패턴: 반복되는 실패, 3번의 시도 후 성공, 7년마다 찾아오는 위기...
재미있는 건, 시간은 객관적인 것 같지만 사실 주관적이라는 거야. 슬픔의 1분은 기쁨의 1시간보다 길게 느껴지잖아. 그 왜곡된 시간감각이 스토리에 깊이를 더해.
내 경우, IMF 때 회사에서 나와 친구들과 옥탑방을 얻었어. 컴퓨터 3대, 불안한 미래, 그리고 무모한 용기만 갖고 사업자등록증을 냈지. 희망도 있었지만 힘든 하루하루가 내 인생 전체를 재구성했어. 누가 알았겠어, 그 위태로운 수개월이 이후 25년의 모든 걸 결정할 줄을. 시간의 무게는 균등하지 않아. 가끔은 며칠이 25년보다 더 묵직하니까.
3. 장소를 느껴라
장소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야. 캐릭터의 확장이고, 때로는 또 다른 주인공이지.
삼성동 오피스에서 나온 기획서와 제주도 카페에서 쓴 기획서는 달라. 내용은 비슷해도 '영혼'이 다르다고 할까.
장소와 환경을 볼 때 중요한 것
물리적 공간: 좁은가? 넓은가? 밝은가? 어두운가?
사회문화적 맥락: 80년대 강남과 지금의 강남은 다른 행성이야.
감각적 요소: 그곳의 소리, 냄새, 질감이 이야기를 살아 숨쉬게 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업 방식은 실제 현장에 가서 느끼는 거야. 한번은 노인 요양원 브로슈어를 만들면서 3일간 요양원에서 밥 먹고 잤어. 그 후 만든 카피와 디자인은 전혀 달랐지. 냄새, 소리, 빛의 각도가 모두 영감이 됐으니까.
장소는 이야기에 질감을 더해. 추상적인 개념도 특정 장소에 놓으면 갑자기 구체적으로 느껴지는 마법 같은 힘이 있어.
4. 갈등을 즐겨라
갈등 없는 스토리는 소금 없는 요리 같아. 아무리 재료가 좋아도 밍밍해.
내가 젊었을 때는 '조화로운' 내러티브를 추구했어. 모든 게 깔끔하게 정리되는. 그런데 그건 현실도, 좋은 스토리도 아니야.
진짜 스토리텔링의 심장은 갈등이야:
욕망과 장애물: 누군가 뭔가를 원하고, 그것을 방해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해.
내적 갈등: 때로는 가장 큰 적이 자기 자신이야. 두려움, 트라우마, 신념의 충돌.
성장의 고통: 변화는 항상 아픔을 동반해. 그 과정이 스토리의 정수지.
한번은 대기업 홍보영상을 만들면서 "화려한 성공 스토리만 넣자"는 클라이언트와 싸웠어. 결국 창업 초기 세 번의 실패 이야기를 넣었더니, 그게 영상의 하이라이트가 됐지.
완벽한 성공보다는 '어떻게 실패를 극복했는가'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거든.
스토리는 어디에나 있어. 우리가 발견하지 못할 뿐.
가장 강력한 스토리는
종종 가장 평범한 곳에 숨어 있다는 거야.
대단한 영웅이 아니라, 출근길에 만난 택시기사의 한마디에서. 화려한 성취가 아니라, 실패한 프로젝트의 뒷이야기에서.
다음에 멋진 스토리가 필요하다면, 이 네 가지 기둥을 기억해. 사람, 시간, 장소, 갈등. 이 렌즈로 세상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홍수처럼 밀려올 거야.
그럼, 오늘도 좋은 스토리 발굴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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