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부터 호주 시드니의 유명 라디오 방송국 CADA에서 정체를 숨긴 채 방송을 진행하던 인물이, 알고 보니 사람이 아닌 AI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호주 전역이 술렁이고 있다.
‘Workdays with Thy’라는 이름으로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힙합, R&B, 팝 음악을 소개하던 이 진행자 ‘Thy’. 단정한 말투에 부드러운 진행, 간간이 던지는 감성 섞인 멘트까지... 청취자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라디오 진행자 한 명이 늘어난 거라 여겼다.
그런데 문제는 이 ‘Thy’가 사람이 아니라 AI로 생성된 목소리였다는 것. 그것도 방송사 소속 재무부서 직원의 실제 목소리와 이미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존재였다는 점이다.
사건의 발단은 시드니의 작가 스테파니 쿰스(Stephanie Coombes)가 뉴스레터 The Carpet에서 “Thy라는 진행자는 왜 SNS도 없고, 프로필도 비어 있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시작됐다. 파고들수록 이상한 점이 많았던 거지. 그리고 결국 방송국 측이 "AI였다"고 시인하게 된다.
방송국 CADA의 소유주인 Australian Radio Network(ARN)는 이후 “우리는 새로운 기술을 실험해보려 한 것일 뿐이며, 더 나은 콘텐츠를 위한 시도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AI라는 사실을 청취자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점은 쉽게 넘어가기 어려운 문제로 번졌다.
호주 음성 배우 협회의 부회장인 테레사 림(Teresa Lim)은 단호하게 말했다.
“AI를 썼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명확히 밝혔어야 한다. 청취자들은 사람이라고 믿었고, 그건 속인 거다.”
게다가 Thy가 아시아계 여성의 이미지와 목소리로 묘사되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림 부회장은 “실제 아시아계 여성들이 라디오 분야에서 활동할 기회를 뺏은 셈”이라며, 이건 토큰주의(Tokenism)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다양성을 빙자한 AI 활용이라는 거지.
이 사건을 계기로 “AI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커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호주 통신미디어청(ACMA)도 별다른 대응 수단이 없다. 왜냐하면, 방송 콘텐츠에 AI 사용을 금지하거나 공개를 의무화하는 규정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Thy가 활동하던 기간 동안 최소 72,000명의 청취자가 ‘그녀’의 방송을 들었다고 하니, AI의 가능성도 분명히 증명되긴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중요한 건 신뢰와 투명성이라는 목소리가 크다.
흥미로운 점은, 같은 AI 진행자를 사용했던 다른 방송국들은 처음부터 AI임을 공개했다는 거다.
2023년 호주의 Disrupt Radio: ‘Debbie Disrupt’라는 AI 뉴스 진행자 사용 → AI임을 명확히 고지
미국 오리건 주 방송국: AI 앵커 사용 → 공식 소개 및 설명 동반
즉, 기술을 쓰는 게 문제가 아니라, 숨긴 방식이 문제라는 걸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AI 기술 실험’이라 보기 어렵다. 방송이라는 신뢰 기반 매체에서 ‘누가 말하고 있는가’는 근본적인 신뢰의 문제다.
우리가 듣는 목소리, 정말 사람이 맞을까?
'Technology and AI > # Alongside AI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당신이 창작자가 아닌 ‘오퍼레이터’가 된 순간 (3) | 2025.05.02 |
---|---|
쓰는 사람과 안 쓰는 사람 (0) | 2025.04.22 |
AI와 그래픽디자인 인연인가? 악연인가? (0) | 2025.04.18 |
@ALTERED-AI VOICE CHANGER (0) | 2023.03.03 |
AI 윤리 및 규정 준수 전문가 (0) | 2023.02.22 |